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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게임

페르시아왕자 시리즈 비교 - '시간의 모래'부터 '망각의 모래'까지

원래는 얼마전 작성한 '페르시아왕자 2008(타락한 왕)'과 '망각의 모래'에 관해 각각 종합리뷰를 쓸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보다 '시간의 모래'부터 시작하는 페르시아왕자 시리즈를 모두 함께 비교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제를 바꿨습니다.


스토리



'시간의 모래'부터 스토리를 조금 단순화 해 이야기 해보자면,

'시간의 모래'에서 페르시아의 왕 샤라만은 인도를 공격하고 그곳에서 '시간의 모래'와 '시간의 단도'를 전리품으로 얻게됩니다. 그것을 탐내던 고관 제르반의 흉계로 인해 왕자와 인도의 공주 파라만 살아남고 모든 사람들은 모래괴물로 변합니다. 자신의 실수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자책감을 느낀 왕자는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 시간의 모래가 있는 궁전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하고, 결국 시간의 모래를 이용해 페르시아가 인도를 공격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는 내용입니다.

'전사의 길'은 그 이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간의 모래를 이용해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은 왕자는 시간의 흐름을 거역한 죄로 '시간의 수호자 다하카'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왕자는 다하카에게서 벗어나고자 '시간의 모래'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없애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시간의 모래'가 태어난 섬으로 향합니다. 시간의 모래를 만들던 여제 칼리나는 자신이 결국 왕자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임을 깨닫고 왕자를 방해하려 합니다. 왕자는 다하카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칼리나 역시 왕자라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결국 왕자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다하카를 물리침으로써 칼리나와 자신 모두를 구합니다.

'두개의 왕좌'는 좀 더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과 칼리나의 운명을 구하고 페르시아로 돌아온 왕자는 1편 '시간의 모래'가 아예 없었던 일이 되었음을 알게됩니다. 당시 영생을 위해 왕자를 흉계에 빠트리고 결국 죽임을 당했던 제르반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게됩니다. 제르반은 페르시아를 침략했고, 칼리나도 납치하여 결국 시간의 힘을 얻는데 성공합니다. 왕자는 시간의 모래에 감염된 채 또다시 모든 일을 되돌리기 위해 제르반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내용입니다.

'시간의 모래'를 소재로 한 세편의 이야기는 이로써 완벽한 스토리를 완성했고 더 이상 손을 댈 부분이 없어보입니다.

이후에 발매된 '타락한 왕'의 경우는 타이틀만 페르시아왕자 일뿐 스토리, 소재, 주인공등 모든 부분에서 전혀 다른 별개의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망각의 모래'는 시간적으로 '시간의 모래'와 '전사의 길'사이에 발생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문제는 '망각의 모래'역시 '타락한 왕'과 마찬가지로 앞선 3편의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모래라는 소재와 시간적 배경에 있어서 공통점이 보이긴 하지만 '망각의 모래'가 아니라 '망각의 불'이나 '망각의 바람'이 됐더라도 상관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망각의 모래' 이야기의 갈등구조는 2004년 발매된 '시간의 모래'에 비해 전혀 나은 점이 없습니다. '두개의 왕좌'에서 왕자 내면의 양심과 폭력성이 대립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사의 길'에서 칼리나와 왕자가 운명에서 벗어난다는 같은 이상을 꿈꾸면서도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갈등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시간의 모래'에서 보여줬던 왕자와 파라사이에 벌어졌던, 시간의 단도를 놓고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의지하는 갈등 정도는 보여줬어야 할텐데, '망각의 모래'에서 나오는 말릭과 왕자간의 갈등은 너무 단순해서 허탈할 정도입니다.
오히려 '타락한 왕'이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스토리의 단순함을 가지고도 왕, 프린스, 엘리카 사이에 얼키고 설킨 복잡한 갈등구조를 만들고 사소한 대화들로 훌륭히 풀어낸 것은 '두개의 왕좌'에 비견될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소재

'시간의 모래'부터 '두개의 왕좌'까지는 소재를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시간의 모래라는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훌륭한 3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던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페르시아 왕자에서 시간의 모래라는 소재를 가지고 3편의 이야기가 훌륭히 완결되었다는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소재의 고갈을 겪게 됩니다. 더 이상 시간의 모래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란 쉬운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페르시아 고대 신화 및 종교입니다.


'타락한 왕'에서 소재로 삼은 것은 페르시아지역에서 발생한 조로아스터교였습니다. 종교에서 설정을 가져오는 것은 이전에도 많았던 시도입니다. 하지만 타락한 왕에서는 자칫 선악의 대결로 단순화 될 수 있었던 갈등구조를 다양하게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출구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망각의 모래'는 마찬가지로 이슬람교의 진(Djinn)이란 종교적 소재를 사용했지만 그 갈등을 풀어냄에 있어서 그리 좋은 방식으로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소재를 살펴봐도 알 수 있듯 나중에 나온 두편의 페르시아 왕자는 진정한 페르시아왕자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타락한 왕'의 경우 기존의 게임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게임을 흥행을 위해 이름만 빌려온 격이라면, '망각의 모래'는 흥행을 위해 페르시아 왕자 시리즈에서 제목과 주인공만 빌려온 게임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타락한 왕'은 새로운 제목의 시리즈로 발매하고, '망각의 모래'는 진(Djinn)을 소재로 삼을 것이 아니라 다하카를 소재로 삼았으면 어떨까도 생각해 봅니다. 그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게임 진행 방식



'시간의 모래'가 2004년 발매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진행방식이 그리 나쁜편은 아닙니다. 또 '전사의 길'은 포털이라는 시간적인 개념과 다하카, 샌드레이쓰로 색다른 재미를 주었습니다. '두개의 왕좌'에서는 다크프린스라는 존재와 레이싱, 스피드 킬등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등장했고 결과 또한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왕'의 경우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연속적인 컨트롤'이 주를 이루는 게임입니다. 한군데 서서 차근차근 길을 찾고 퍼즐을 풀어내는 방식보다는 엘리카와의 협동을 통해 공중에서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연속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주된 방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망각의 모래'에서도 색다른 방식이 등장합니다. 스킬포인트, 물을 통제하는 힘, 새를 이용한 연속 점프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물을 이용하는 방식은 색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만 스킬포인트에 관한 부분은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전투

'시간의 모래'는 전투가 단조롭긴 했지만 난이도 조정에 성공한 편이라 그리 지루하지 않게 전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사의 길'은 전투 부분에서만큼은 최고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정말 다양한 적이 등장하고 그들에 맞게 전투방식도 달라져야 하며, 공격의 연속동작 등도 셀수 없이 다양했습니다.


'두개의 왕좌'에서도 스피드 킬이라는 상당히 매력적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재미로 자리잡았고, 왕자와는 전혀 다른 전투방식을 사용하는 다크프린스의 존재도 훌륭했습니다.


심지어 '타락한 왕'마저도 전투의 방식과 난이도에 대해서는 크게 낮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타락자들을 제외한 적들을 처리하는 방식은 구석으로 밀어내는 것 한가지 뿐이지만, 엘리카와의 연계공격이나 상대의 동작에 반응하여 공격 혹은 방어의 방식을 달리하는 것은 좋은 점수를 줄 만했습니다.

하지만 '망각의 모래'는 전투에 있어서 만큼은 전혀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난이도 조정에도 실패했을 뿐만아니라, 왕자의 공격패턴은 발차기와 칼을 휘두르는 것 두가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 왕자 시리즈 중 정말 최악의 전투시스템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캐릭터 디자인

이 부분은 정말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시리즈 각편의 히로인들을 살펴보면


좌측은 '시간의 모래'에 나오는 파라의 모습이고, 우측은 '두개의 왕좌'에 나오는 파라의 모습입니다.


'전사의 길'에 나오는 칼리나입니다.


'타락한 왕'에 나오는 엘리카입니다.


'망각의 모래'에 나오는 라지아입니다. ㅡㅡ;;
사실 페르시아 지역에서 공주 등 히로인의 모습이 라지아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것이 사실성을 더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부분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게임이 사실성에 충실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성에 입각해서 캐릭터를 디자인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면, 애초에 '불꽃없는 연기로 이루어진 이프리트'를 그렇게 표현해서는 안됐으며, 특성이 불분명한 마리드를 물의 수호신으로 설정해서는 안됐습니다.

여성캐릭터를 예로 들었지만 왕자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픽적인 기술은 이전과 비교해서 월등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디자인은 전편 '타락한 왕'이 카툰렌더링 방식이어서 비교불가능 한것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UBI소프트 캐릭터 디자이너는 툼레이더의 라라가 왜 시리즈마다 점점 더 예뻐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시길...)


완성도

전체적인 완성도를 비교하자면 '두개의 왕좌'와 '전사의 길'은 비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는 점도 이유가 돼겠지만, 둘 다 빼어난 수작이라는 점은 거의 모든 분들이 동의 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전사의 길'이 더 이전에 나왔음에도 완성도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면, 오히려 더 뛰어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어 '전사의 길' 손을 들어줄 듯 합니다.
그리고 불만스러워 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특유의 연속동작에 대한 손맛과, 엘리카와 프린스의 겉으로 절대 드러나지 않는 갈등구조, 엘리카의 내면적인 갈등, 새드엔딩까지 한편의 이야기로는 부족함이 없는 '타락한 왕'이 그 뒤를 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망각의 모래'와 '시간의 모래'를 비교하자면, 시나리오에서나 게임 구조적으로는 절대 우위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물을 통제하는 컨트롤이나 그래픽적으로 더 뛰어남을 이유로 들어 '망각의 모래'를 꼽겠습니다.

사실상 가장 최근에 발매된 게임임에도 가장 처음에 발매된 게임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점은 오히려 '망각의 모래'가 참패한 것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타락한 왕'은 시작 전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시나리오적인 우수성이라든가, 엘리카와의 협동에 의한 연속동작을 했을 때의 손맛때문에 게임을 다 클리어 할때쯤엔 괜찮은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망각의 모래'는 플레이 하면 할수록 단순한 패턴의 반복때문에 집중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UBI소프트가 페르시아 왕자 시리즈의 다음편을 계획한다면 '타락한 왕'의 후편이나, '시간의 모래'와 연속선상에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길 바랍니다. 적어도 '망각의 모래'처럼 이것저것 빌려다 만든 게임이 아니길 빌어봅니다.


잡담 (왜 '망각'의 모래인가?)

잡담입니다. 저 역시 'Forgotten Sands'를 망각의 모래라고 썼지만, 이것이 과연 적절한 제목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Sand of Time'를 '시간의 모래'로, 'Warrior Within'을 '전사의 길'로, 'The Two Throne'을 '두개의 왕좌'로 번역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Warrior Within'을 '전사의 길'로 번역한 것에는 약간 이견이 있을지 모르나, 원제목은 물론 내용과 비교해봐도 그만한 제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타락한 왕'의 경우 NDSi 버전에서 'The Fallen King'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지, 공식적인 타이틀은 아닙니다. 매뉴얼에는 왕을 'The Fallen King'으로 표기하지 않고, 'Mourning King'로 표기했던 걸 봐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망각의 모래(The Forgotten Sands)'입니다.
제 영어실력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기 대문에 Forgotten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망각의 모래'라는 타이틀이 시나리오에 어울리는 타이틀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망각의 모래'라고 하면 대개 이런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망각이라는 현상을 일으키는 모래'정도의 뜻을 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모래를 만지게 되면 기억을 상실한다'면 망각의 모래가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내용은 수천년전 봉인됐던 모래가 다시 풀려난다라는 이야기 이므로 '잊혀졌던 모래괴물의 봉인이 다시 풀렸다.'는 의미로 '잊혀진 모래'라고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망각의 모래'라는게 국내 수입되는 공식적인 타이틀인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포털사이트에서도 망각의 모래로 표시하는 것을 보면 공식 타이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누가 이렇게 타이틀을 번역했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주장'이 아니라 정말 쓸데없는 '잡담'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