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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게임

스틸라이프2 (1) 로스엔젤레스


1막. 로스엔젤레스 (프롤로그)



먼저 스틸라이프 1편의 내용이 영상으로 요약되어 잠시 스쳐지나갑니다.
(스틸라이프 1에 관한 내용은 상단의 탭에서 '스틸라이프'를 선택하시면 보실수 있습니다.)



2005년 1월 2일 오후 11시 로스엔젤레스
끔찍한 사진들이 바닥에 널려있는 호텔방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빅토리아 맥퍼슨의 휴대폰이 울립니다.

빅토리아 : 빅토리아 맥퍼슨입니다.
클레어 : 안녕, 빅토리아. 클레어야. 로스엔젤레스는 어때?
빅토리아 : 클레어! 잘 모르겠어요. 전혀 진전이 없는 것 같아요. 일련의 살인사건 사이에서 연관점을 찾기가 힘들어요.
클레어 : 그 사건에만 너무 매달리니까 그러는 거야. 네가 FBI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혼자서 외롭게 퍼즐조각을 맞추는데 매달리지 않았을거야.
빅토리아 : 또 시작이예요? 클레어. 당신이 FBI를 그만두겠다는 내 결정을 탐탁치 않아 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썩어빠진 개자식을 위해 일하라구요? 그건 사양할게요.
클레어 : 그 썩어빠진 자식이 여기서 영원히 근무하지 않을거라는 건 너도 알잖아. '살인범 사망'이라고 결론내리고 수사를 종결시킨 건, 시카고 FBI에 근무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반기지 않았어.
빅토리아 : 그 빌어먹을 자식이 정말 죽었다는걸 증명할만한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다시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돼요. 내가 그를 향해 총을 쐈을 때, 그는 물에 빠졌어요. 난 내가 그를 맞췄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들었던 거라고는 그의 시체를 찾을 수 없다는 말뿐이었어요.
클레어 : 그래, 거기에 대해선 네 생각이 맞아. 의심이 가는게 당연해. 하지만 토미노바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얼음처럼 차가웠어. 네가 범인을 맞추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차가운 물에 빠져 죽었을걸...
빅토리아 : 나도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가 제물로 삼은 그 여성들 모두를 생각하면...
클레어 : 시카고 사건의 범인이 모방한걸로 추정되는 최초의 살인범에 대해 찾아낸게 있어? 그의 이름이 애커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빅토리아 : 마크 애커만이예요. 허버트 애커만 주지사의 아들이죠. 그는 두가지 패턴의 살인사건들을 저지르고, 30년대 초반에 정신병원에 갇혔어요.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자면 그는 절대로 유죄가 될 수 없어요.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살인사건에 연루됐다는 스캔들을 피하기 위해서, FBI의 협력하에 그를 정신병원에 가둔거니까요. 그 당시의 FBI도 마찬가지로 부패해 있었다는걸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와요.
클레어 : 그 은퇴했다는 수사관 해리슨을 캘리포니아에서 만나기로 했었지? 만났어?
빅토리아 : 네, 1956년 사건에 관한 파일 전부를 받았어요. 그는 마크 애커만이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의 배후라고 확신했어요.
클레어 : 정말? 그럼 수십년 전에 여성연쇄살인 사건을, 50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 따라하고 있다는 거네. 끔찍한데...
빅토리아 : 네, 하지만 이 사건을 파헤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때문이예요. 할아버지가 이 사건과 관련돼있어요. 할어버지는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걸 잃으셨어요. 허버트 애커만이 오히려 할아버지를 용의자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는, 전 거짓속에 감춰진 진실이 무엇인가 알고 싶었을 뿐이예요. 어떤 대가를 치룬다 한들 상관없어요.
클레어 : 네가 찾는걸 어서 찾길 바랄게. 빅토리아. 만약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빅토리아 : 범인이 마지막 제물로 삼으려 했던 미아는 요즘 어때요? 아직 병원에 있나요?
클레어 : 좀 나아졌어. 충격에서 이제 막 벗어난 것 같아. 의사는 괜찮을거라고 하더라고.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야. 어제 그녀를 보러 병원에 갔었어. 시카고를 떠날거라더라. 안좋은 기억이 너무 많아서...

빅토리아 : FBI는 요즘 어때요? 밀러는 여전히 사건현장에서 구역질을 하나요?
클레어 : 응~ 사람들과 새해를 기념하려고 모인 식사라지에서 또 탈이 났어. 누군가 그의 연어 카나페에 타바스코 소스를 잔뜩 뿌렸지 뭐야. 그리고 그 썩어빠진 반장은 최근에 보질 못했어. 네가 그렇게 그만두고 난 뒤로는 자기 책상에 앉아만 있을 뿐이야. 하지만 많이 변하지는 않았어. 어쨋든 그는 FBI를 절대 그만두지 않을거야.
빅토리아 : 사건에 대해 좀더 얘기해 줄수 있죠? 지금 수사는 어디서 담당하고 있죠? 반장이 수사 지원금을 더이상 지원하지 않기로 한 이후에도 누군가 그 사건을 계속 조사하는 사람이 있나요?
클레어 : 공식적으로 범인은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어. 그래서 반장은 그 사건을 종결시켰지. 그는 좀 서두르는 것 같았어.
빅토리아 : 확실히 그랬을걸요. 살해된 여성들은 일부 부유층들과 어울리곤 했어요. 반장도 그들 중 하나죠. 그가 스캔들을 막기 위해 뭘 포기했는지 궁금하군요. 내가 그 자식 밑에서 일하던 때를 생각할 때마다... 아.. 머리가 아파와요.

빅토리아 : 혹시 리차드가 당신을 귀찮게 한건 아니죠? 자동응답기에 메시지가 남겨놨더라구요.
클레어 : 미아에 대해 물어보려고 전화한 적이 있어. 그는 그녀가 그런 일을 겪은데에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살인범에게 창고를 열어준 것 말이야.
빅토리아 : 알아요. 그는 자신에게 엄격하죠. 하지만 살인범에게 창고를 열어주지 않았다면, 미아를 제물로 삼기위해 오히려 리차드를 해쳤을 거라는건 말할 필요도 없어요.
클레어 : 어쨋든 그는 널 그리워 하고 있어. 그건 확실해.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어.

빅토리아 :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부탁할게요. 어려운 부탁이예요. FBI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야 해요.
클레어 : 수사를 위해서? 와! 최근 들어 규정을 여러번 위반하게 되는데...
빅토리아 : 당신에게 문제가 생기는 건 바라지 않아요.
클레어 : 걱정하지마. 접속코드는 며칠마다 바뀌니까, 알아봐서 메시지로 보내줄게. 됐지?
빅토리아 : 고마워요. 클레어. 이제 그만 귀찮게 할게요. 나중에 다시 통화해요.



스마트폰은 사건에 관한 내용을 요약해 되짚어 주거나,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지금은 들어있는 문서 중 별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리차드로부터 온 메시지가 있긴 하지만 보고싶다는 내용뿐입니다.



빅토리아 : 그럼 수집한 증거를 다시 살펴볼까.. 이 자료들을 통해 알게되는 사실을 스마트폰에 적어둘거야.

하나하나 증거를 되짚어 보도록 합니다.



빅토리아 :  살인범은 강으로 떨어지기 전 가면이 벗겨졌어. 클레어의 말에 따르면 연구소에 그 가면을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지.



빅토리아 : 이 그림에 그려진 여성들은 애커만의 희생자들이야.



빅토리아 : 1956년 3월 19일자 신문기사야.

이 신문기사는 해리슨에 의해 요약됨.

LA Tribune 신문은 지난달 발생한 5건의 살인사건 용의자 '로스엔젤레스 연쇄살인마'로 지목당한 해롤드 페린의 체포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피해여성들은 모두 젊은 성매매 여성들이었고, 발견 당시 사체가 끔찍하게 훼손돼 있었다.
범인을 체포한 사람은 수사관 마이클 해리슨으로, 페린을 미행하다 그가 젊은 성매매 여성들을 염탐하는 것을 보고 긴급체포했다. 해롤드 페린은 현재 수사관 해리슨에 의해 심문이 진행되는 중이기 때문에, 심문이 종료되는 대로 수사에 관한 사항을 공표하기 위한 기자회견이 열것이라고 기사에 실려있다.
또한 기사의 마지막부분에서는 이 사건을 9년전 발생했던 '엘리자베스 앤 쇼트'의 죽음과 비교하며, "로스엔젤레스의 연쇄살인 사건은 블랙달리아 사건과 흉폭함이 유사하다. 이 두 사건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라고 쓰며 기사를 마무리 했다.



빅토리아 : 이 두사건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이야기는 멍청하고 욕심많은 기자가 넘겨짚은 이야기가 아닌가 의심스러워.



빅토리아 : 이건 리차드가 기획했던 애커만 전시회의 안내책자야. 그림의 복원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로워.

이 안내책자는 리차드 발더스가 작성한 것임.

마크 애커만 : 전시회
시카고의 발데스 미술관은 최초로 마크 애커만의 작품을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20년대 중반의 미국인 화가, 애커만은 로스엔젤레스에 정착하기 전, 유럽에서 아주 오랫동안 지내왔다. 이 전시회는 드라마틱했던 예술가의 삶 중 대중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기간의 작품이 아닌 다른 기간의 작품을 전시했다.
마크 애커만의 그림은 남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 그대로를 자유롭게 표현했다. 풍경화와 초상화에서 환상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 평온함과 근심 등을 능숙하게 섞어 표현했고, 그가 유명해지기 전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창조적이고 열정적인 그림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곤 했다.
발데스 미술관은 시카고 대학의 아트디렉터이자 이 전시회의 기획자인 제랄드 카터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 전시회의 개최를 위한 자금은 '라비린스 재단'이 지원했다.
몇가지 복원이 완료된 그림의 경우 안내책자에 함께 실었다. : 하이드 박사, 제자, 베아트리체



빅토리아 : "라비린스 재단"이라... 이 사건의 수사를 하는 동안 두번째 듣는 이름이군. 아마 웹사이트가 있을거야.



빅토리아 : 1956년 3월 22일자 신문기사야. 이 기사는 마크 애커만이 수용됐던 병원의 화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어.

이 기사는 해리슨에 의해 요약됨.

"로스엔젤레스 타임스" 신문기사
3월 21일 개인 클리닉인 브롬든 정신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10명이 사망했다. 이 병원의 의사중 한명인 켈리박사 역시 이번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사이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허버트 애커만의 아들, 마크 애커만도 포함되어 있다. 마크 애커만은 켈리박사의 환자로 이 병원에서 20년 이상 입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화재의 유력한 용의자로 마크 애커만을 지목하고 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간호사가 화재를 발견하고 경보를 울렸다. 그녀는 "만약 내가 아들 헨리와 점심을 먹으러 밖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나도 죽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그 간호사는 다른 병원에서 이 병원으로 이직해, 켈리 박사와 수년간 함께 근무해왔기 때문에 방화용의자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마크 애커만에 대한 경찰의 용의자 지목에 대해 아무런 부정도 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 이 간호사... 그녀는 아마 애커만과 관계가 있을거야. 그녀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찾아야 해.



빅토리아 : 이건 해리슨에 준 로스엔젤레스 살인사건 일지야. 그의 결론은 공식적인 발표내용과 달라.

이 파일은 LAPD 수사관 마이클 해리슨에 의해 작성됨.

1955년 12월부터 1956년 3월까지 5명의 성매매 여성이 로스엔젤레스 골목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그들은 모두 자상과 장기적출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사체는 심하게 훼손돼 있었고, 손이나 발이 절단된 채 발견되었다. 이 사건들은 모두 목격자가 없는 장소에서 발생했으며, 범죄현장에서 어떠한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언론은 그 살인범에게 "로스엔젤레스 살인마"라는 별명을 붙였고, 무능력한 경찰에게는 냉혹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수사를 담당한 해리슨 수사관은 어서 범인을 체포하라는 강력한 압박을 받았다.
1956년 3월 19일 마침내 용의자 해롤드 페린은 체포되었다.
페린은 브롬든 정신병원의 환자였다. 경찰이 주문을 구한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그는 수많은 정신병적 증상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정신병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2년 전에 해당 병원을 퇴원했고, 그의 정신적 상태를 의사들은 정상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슨은 해롤드 페린이 마크 애커만의 지시로 그러한 일을 저질렀다고 믿었다. 그 사람은 마크 애커만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화가였다. 하지만 해리슨의 주장은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었는데, 이는 애커만은 페린이 체포된 이틀 후 화재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로스엔젤레스 살인마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해리슨은 애커만을 용의자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사건과의 유사정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리슨은 사립탐정 구스타프 맥퍼슨과 만났다. 맥퍼슨은 오래전에 발생한 사건 중 하나를 맡은 적이 있었다. 맥퍼슨은 아주 충격적인 문서를 그에게 보내왔다. 그 문서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이자, 마크 애커만의 아버지인 허버트 애커만의 자백이 담겨있었다. 그 자백의 내용은 허버트 애커만이 1929년 프라하와 1931년 시카고에서 발생한 두가지 사건이 아들의 소행이었음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애커만은 브롬든 정신병원에 1932년부터 입원했고, 에드워드 켈리 박사의 도움으로 20년 이상 범죄에 관한 본성을 억눌렀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본성은 그를 전혀 나아지게 하지 못했다. 정신병원을 떠나는 것이 불가능했던 애커만은 자신을 대신해 범죄를 저지를 대리인을 선택했다.
애커만을 의심한 해리슨은 몇차례 병원을 찾았고, 애커만에게 종종 해롤드 페린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음을 알게됐다. 해롤드 페린은 겉보이에는 평범한 젊은이 였으나, 이미 3년간 가벼운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아왔었다. 3월 19일 해롤드 페린를 체포한 것에 이어, 페린을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지목하는 내용의 성명이 언론을 통해 발표되었다.
3월 21일 저녁 페린은 마크 애커만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 했다. 이후 그는 범죄를 모두 자백했지만, 멘토의 존재에 대한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다. 비록 해리슨은 사건의 배후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마크 애커만에 대한 자료는 비공식적인 문서가 됐다. 페린의 체포와 애커만의 죽음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해리슨은 애커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 그가 그린 그림을 보았고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그 가설에 따르면 그 그림이야말로 애커만의 범죄동기였다. 애커만은 그림을 병들고 불안한 느낌으로 채웠지만, 한편으론 믿을 수 없을만큼의 강렬함이 그림에 표현되어 있었다. 애커만이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한 동안 그렸던 그림은 진실이 담겨있지 않았다. 해리슨은 그가 죽기 바로 직전에 그렸을 거라 생각되는 애커만의 마지막 그림 한점이 어딘가에 있다고 확신했다.

추가내용: 해리슨은 허버트 애커만의 자백이 담긴 2003년 작성된 파일의 일부를 허버트 애커만의 전기를 집필중이던 기자 에밀리 자코비치에게 건네줬다. 진실을 증명하는 것은 원본문서와 함께 기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빅토리아 : 자코비치... 이 이름 알아! 어디서 들어봤더라...



사건파일을 모두 검토했으니 컴퓨터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하지만 노트북의 배터리가 다됐기 때문에 전원케이블을 찾아서 연결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클레어로부터 FBI 데이터베이스 접속 암호가 오지 않았으니 인터넷 검색만하도록 합니다.



라비린스 재단 : 예술의 전파와 보호에 관한 공공재단
설립자 : 베아트리체 앨런

라비린스 재단의 목표는 예술품을 보호하고 젊은 예술가들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활동으로는 전시회 기획, 고화의 복원, 장학제도 마련과 재원 마련, 공공전시를 위한 예술품의 발굴, 예술품에 대한 법적 자문과 평가 등이 있습니다.
라비린스 재단은 1961년 베아트리체 앨런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재단의 자금은 예술을 사랑하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허버트 애커만의 기부로 이루어졌습니다.
라비린스 재단은 예술가의 비밀을 존중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합니다.(저작권 등)
재단 임원의 모임은 매달 뉴욕에 위치한 재단 사무실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밖에 다른 질문이 있다면, 웹사이트에 당신의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빅토리아 : 허버트 애커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흠... 그리고 이 베이트리제 앨런... 그녀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찾아야 해.



시카고의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난 허버트 클락 애커만은 어린시절부터 리더의 자질을 보이곤 했다. 그가 12살 되던 해 부모님을 여의고, 이후에는 오레곤주의 삼촌댁에서 자랐다. 그는 자라서 삼촌의 회사에 취직했고, 공학기술을 더 공부하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했다. 1905년 샌프란시스코 은행가의 딸과 결혼한 그는 1년후 아들 마크를 낳았다. 불행히도, 그의 아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숨졌다. 9년후 그는 젊은 프랑스 여성과 재혼했다.
종종 해외출장을 가곤 했던 그가 마침 영국에 머무르고 있던 때 1차 세계대전의 발발했고, 점차 그는 자신의 공학기술 대신, 외교적인 역할로 일하게 됐다. 그 후 10년 이상, 그는 외교관으로써 살게됐고 그 기간동안 그의 아들 역시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다양한 국가를 체험할 수 있었다.
1929년 말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시카고에 정착했다. 3년후 그는 다시 로스엔젤레스로 이사했고, 그후로는 그곳에 정착했다. 캘리포니아에서 그의 정치적 경력을 인정받아, 1949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선출됐고, 1953년에도 재선출되었다.
그는 두번째 임기를 마친뒤 1년간 로스엔젤레스에서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결국 사망했다.




라비린스 재단의 설립자이자 재단 이사장인 베아트리체 앨런은 1912년 샌디에고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음악가였다.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그녀의 여생을 위해 예술적 열정은 잠시 미뤄두고, 간호학을 공부해 다양한 공공병원에서 일했다. 후에 그녀는 정신질환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브롬든 개인 정신병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환자에 대한 박애심과 프로정신으로 20년 이상 브롬든 병원에서 일했다. 병원장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그녀는 예술을 접목한 새로운 기법을 치료에 도입했다.
1956년 베아트리체 앨런은 예술에 전념하기 위해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1958년 그녀는 애커만 주지사의 유산상속인이 됐다. 그녀는 애커만이 남긴 유산의 대부분을 예술분야에 투자했고, 몇년 후 그녀가 평생 일했던 라비린스 재단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베아트리체 앨런은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아들이 있었다. 그는 1985년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 사건 으로 베아트리체는 남은 여생동안 가장 큰 행복이 되었던 손자와 함께 살게 됐다. 베아트리체 앨런은 2002년 뉴욕에서 사망했고, 그녀의 엄청난 예술품 콜렉션은 라비린스 재단이 관리하게 되었다.



빅토리아 : 베아트리체 앨런은 애커만의 그림에 나오는 여자야.. 확실해. 그녀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야 해. 그녀의 아들이 열쇠가 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의 풀네임이 필요한데..


헝가리 출신 화가. 1862년 출생. 1904년 사망
자코비치는 예술 클럽에서 피아니스트로 유명했고, 창백하고 수척한 모습때문에 프랭크 리스트에 의해 '하얀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헝가리의 상징주의 학교의 학생이기도 했던 자코비치는 주로 어두운 주제에 심취했고, '죽음과 어린소녀'라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다.



빅토리아 : 이 화가는 오래전에 죽었어... 그 기자가 가명을 사용한거야.



이벤트 : 독점 전시회
시카고 발데스 미술관은 마크 애커만의 작품을 최초로 전시한다. 마크 애커만은 미국인 화가로 널리 알려진 화가는 아니지만, 그의 그림은 주목할 만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그림에는 예술과 예술가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복잡성이 표현돼있다. 1929년에 그려진 마크 애커만의 그림은 다음페이지에 '거친물살위의 다리'라는 제목으로 복원된 모습이 실려있다.

전시회 안내책자 발췌
: 전면에 있는 여성은 분명하게도 아주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그녀는 보는 이를 직접 응시하지만 그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감을 깨닫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늘은 보통 자유와 개방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여기에서는 배경에 불길한 빛이 드리워져 격동적이고 숨막힐 듯한 느낌을 준다.

애커만 전시회는 1월 31일까지 발데스 미술관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면 클레어로부터 온 FBI 데이터베이스 접속암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합니다.



접근허가 : 3급
IDDB : 0 208 158 C / 24071956
이름 : 페린
: 해롤드 윌리엄 조지
별명 : 로스엔젤레스 살인마
성별 : 남성
국적 : 미국
특이점 : 턱에 흉터, 신경질적 성격
생년월일 및 출생지 : 1929년 9월 19일, 애리조나주 피닉스 출생.
사망일 및 원인 : 1956년 6월 3일, 목을 매달아 자살.
기소내용 : 잔혹한 5건의 살인사건
추가내용 : 페린은 체포된 후 2달이 채 되기 전 자신의 독방에서 목을 매달았다.



빅토리아 : 30년대에 관련된 파일이 이미 삭제됐어. 아마 FBI와 허버트 애커만이 거래를 했을거야. 건드릴 수 없게 됐군.

대부분의 파일이 삭제되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접근허가 : 2급
IDDB : 0 551 435 K / 08111967
이름 : 앨런
: 헨리 마크
별명 : 없음
성별 : 남성
국적 : 미국
특이점 : 없음
생년월일 및 출생지 : 1940년 8월 24일, 캘리포니아 출생.
사망일 및 원인 : 1985년 5월 19일, 자동차 사고로 사망.
기소내용 : 보험사기, 공문서위조, 마약소지, 절도, 가정폭력.
추가내용 : 앨런의 부인 마리아 안젤리나 발데스도 1985년 발생한 자동차 사고로 앨런과 함께 사망했다. 앨런과 발데스 사이에 리차드라는 이름의 아이가 있었다.



빅토리아 : 아들 이름이 리차드... 젠장! 거짓말이야! 이건 우연의 일치라도 이럴순 없어!

애인인 리차드가 애커만과 관계가 있는 인물임을 알게된 빅토리아는 크게 놀라 리차드에게 전화를 합니다.



자동응답 : 지금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빅토리아 : 이럴수가...  리차드... 만약 당신이 그 간호사의 손자라면, 왜 나한테 그 얘기를 하지 않은 거지? 시카고로 지금 당장 돌아가서, 이유를 알아야 겠어.